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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A'S ROOM

이나라의 방 - 8月 책방

당신에게 여름은 무엇인가요?

초록으로 물든 거리와 따가운 햇빛,

달궈진 아스팔트의 열기,

찌르르 울리는 매미 소리,

쏟아지는 장맛비와 우산 없이도 즐겁던 어느 날의 기억.

생동하는 이 계절을 친애하는 마음을 담아 여름을 보내며 읽기 좋은 독립서적을 추천합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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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것들은 항상 아래로 향한다> 
저자 : 윤수필 

 

그날은 장마였다. 장마의 시작이었고, 억수 같은 비가 쏟아졌다. 마치 욕실 타일에 눌러붙은 곰팡이를 씻어내기 위해 수압 높인 샤워기로 일점사를 하듯이, 비는 너의 곁에서 나를 씻어내려 했다. 우산은 소용이 없었고, 뽀얗던 너의 원피스 끝자락은 물에

젖어 축축해졌다. 낡은 삼선 슬퍼 앞쪽에 가지런히 내밀어진 너의 다섯 발톱이 빨간색이었던가 주황색이었던가.

나는 너에게 삼선이다. 누군가는 너에게 힐이겠지. 지난번 선을 본 또 다른 사람은 플랫 슈즈였는데. 

 

… 

 

무거운 것들은 항상 아래로 향합니다. 나 역시 아래로 향하고 있습니다. 곤두박질합니다. 나는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 점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세상 가장 낮은 곳을 모이게 될 것입니다. 마음이 무겁습니까? 어깨가 무겁습니까? 어서 오십시오. 환영합니다. 두려워 마십시오. 중력은 사실 아래가 아니라 중심을 향합니다.  

2

<여름밤, 비 냄새> 
저자 : 김현경 

 

새벽녘 선잠에 그를 떠올렸다. 창에 비치는 푸른 빛과 새로 꺼낸 부드러운 여름 이불에 기분이 좋았다.

그를 이런 새벽녘 떠올리게 될 줄은 몰랐다. 그가 사는 곳이, 살던 곳이 어딘지도 듣고는 바로 잊었을 정도였다.

달라진 것은 아마, ‘이제 더는 볼 일이 없겠지’ 생각한 후였다.

반쯤 잠든 채로 며칠간 형체도 없이 둥둥 떠다니던 문장들을 엮어보려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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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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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난 여름에 있어> 

저자 : 김미현 

 

“여름. 우우아.  

태양은 높이, 몸이 다 뜨겁네 

돈은 없고 시간은 많아 

어차피 돈은 필용 없어 

아아아. 여름” 

 

그들은 80년대 러시아에서 록 음악을 하던 젊은이들이었다. 해변에서 종일 춤추고 노래하고, 그걸로도 모자라 밤엔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옷이며, 속옷까지 모조리 벗어던지고 물속으로 뛰쳐 들어갔다. 내일이 없는 듯이 환호성을 지르고 웃고, 젊음을 마구 쏟아냈다.  

 

그들이 보내고 있던 때는 사실 캄캄한 시절이었다. 당시 러시아에선 록 음악을 마음대로 연주할 수 도, 들을 수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토록 어둡던 시기에도 젊음은 빛나고 있었다. 어떤 암흑과 규제에 갇혀 지내기에, 그들의 젊음과 여름은 너무 아름다웠다. 온전히 다 쏟아내기에도 시간이 부족했다. 나는 흑백으로 표현된 그 영화에서 흑백을 뚫고 나오는 빛을 봤다. 그 영화의 제목은 <레토> 바로 ‘여름’이라는 뜻이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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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시집선008 여름> 
저자 : 손연후 외 52명 

 

-여름소리- 

 

여름을 건드리면 

유리컵을 타고 부푼 숨을 따라 

챙 하는 소리가 난다 

 

바람이 지난 자리의 간지러움 

구름마저 씻겨간 잔웃음 

이제 막 깨어난 사람 결의 잠냄새 

세상 모든 걸 들어 올리는 저렇게 작은 입꼬리 

 

흩날리는 그리움 앞에 두 글자를 붙여 

또렷이 만든 이 마음은 

 

여름잠과 여름밤과 여름날은 

 

세 계절을 숨죽여 기다리다 

챙 하고 발음한  

나의 새맑은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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